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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시황을 암살하려 했던 전국시대의 협객 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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風蕭蕭兮易水寒

바람은 쓸쓸하고 역수물은 차구나

壯士一去兮不復還

대장부 한 번 떠나면 다시 돌아오지 못하리


한 남자가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떠나는 길에


역수()건너면서 남겼다고 알려진 이 노래는


역수가(歌)로 불리며 오늘날 까지 전해진다.


이 노래를 부른 남자의 이름은 형가로 그


유명한 중국의 최초의 통일국가를 세운 진나라의


진시황이 아직 진왕으로 있을적에 암살을 시도했던


인물이며, 그 길을 떠나면서 남긴 노래가 


바로 이 역수가이다. 오늘은 이 형가란 인물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다.



형가의 생애


형가의 조상은 제나라 출신의 귀족이였지만,


형가 본인은 위나라에서 나고 자랐다. 후에


진나라가 위나라를 멸망시키자, 연나라로 터지를


옮기게 되었고, 후에는 연나라의 형가로 더 유명해


졌다. 이미 위나라에 머물때부터 책 읽기를 좋아하며


검을 잘쓴다고 소문이 자자했었고,  연나라에 와서는


검객으로써 명성을 날리게 된다. 그러던 중에 영정


(훗날의 진시황)이 왕으로 있던 진나라가 한나라와


조나라를 차례차례 멸망시키고 천하의 패권을 쥐어가고


있는 상황이였고, 연나라마저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상황에서 연나라의 태자 단이 형가를 찾아와서 연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 영정을 암살해줄것을 권한다.




형가는 이 권유를 받아들였고, 이에 태자 단은


형가에게 명검인 상절(霜切)을 하사한다. 당시 형가와


태자 단의 계획은 형가가 진나라에 사신으로가서


연나라의 전략 요충지가 그려진 지도를 진상물로


받치겠다하고, 지도속에 칼을 숨기고가 지도를 받치는


척 하면서 칼을 빼들어 진왕 영정을 암살하려는 것이였다.


당시 사신은 정사와 부사 두명이 같이 가는게 원칙이였기


때문에, 부사를 맡아줄 사람이 필요했는데, 형가는 원래


자신과 친분이 있으면서, 검객으로 자신과 동등한 명성을


가지고 있던 노구천을 부사로 데리고 가려고 그를 청했지만


노구천은 오지 않았고, 하는수없이 진무양이라고 이미 13살때


사람을 죽여본적이 있으며 제법 담이 크다고 알려진 사람을


부사로 삼아서 가게된다. (후에 알려진 사실은 당시 노구천은


강이 범람해서 건너오지 못하고 있었기에 형가에게 가지 못했던


것이라 한다.) 형가와 진무양은 같이 역수를 건너 진나라로


가게 되는데, 이때 남긴 노래가 바로 역수가이다. 



그 둘은 별다른 의심을 받지않고, 진왕 영정 앞에까지 


다다르게 되는데, 일이 안될려고 그랬던건지, 영정앞에 다다르자 


태연자악한 형가 와는 다르게, 부사로 따라온 진무양이


진나라의 위세에 눌려 도둑이 제발 저린양 벌벌 떨기 시작했고, 


결국 진왕 영정의 의심을 사게 된다. 





이에 형가는 "천한 시골 녀석이라 천자를 뵈오니 


떨리나 봅니다"라면서 태연한게 넘기는 기지를


발휘했지만, 진상물로 가져온 지도를 펼치는 과정에서


진무양이 손을 떨다가 두루마리 한쪽을 놓치는 바람에


숨겨둔 검이 땅에 떨어지게 되었고, 이에 놀란 진왕


영정은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달아나게 된다.


형가는 검을 집어들고 영정을 쫏아가지만,  기둥을


사이에 놓고 영정은 숨바꼭질 하듯 요리조리 피하게


되는 형세가 되고, 결국 기회를 잡은 형가가 회심의


일격을 날리지만, 당시 어의였던 하무저란 인물이


약주머니를 던져 영정을 구하게 되고, 그 틈에 영정이


칼을 뽑아 형가를 찔러 결국 형가가 되려 죽게된다.



(이일로 하무저는 진왕에게 막대한 보상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단 한번 약주머니를


던진걸로 3대가 먹고 살만한 부자가 되었다는..


역시 인생은 한방)


이로써 암살은 허무하게 실패로 끝나게 되고,


이 일을 계기로 진나라는 연나라를 공격, 결국 연나라도


진나라에 의해 멸망하게 되는 일이 일어난다.




형가와 관련된 이야기들


2002년도 작인 장예모 감독의 영웅이라는 영화의 


모티브가 된 인물이 형가이고, 이연걸이 맡은 역할인 무명이


형가라고 보는게 정설이다.  그외에도 98년도에


나온 시황제암살(원제는 형가자진왕)이라는 영화 또한


형가의 열전을 기본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이다.


이처럼 오늘날에도 형가가 종종 조명이 될 정도로,


그가 살아생전 남긴 업적에 비해 단지 시황제를


암살을 시도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역사에


자신의 족적을 확실하게 남겼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다보니 그에 대한 평가를 가끔 극과 극을


달리기도 하는데, 최근에 들어서는 대체로 부정적인


평가가 많아지고 있다. 그럴것이 현대의 중국은


하나의 중국을 외치는 중인데, 형가는 진나라가


통일을 이룩하는 과정에서 훼방을 놓으려한 인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반대로 진시황의 통일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에서는 형가의 암살시도는 진나라의 독주를


막고자한 의로운행동이다라고 평가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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